Actions

Work Header

Nate and the Dumbasses Continued Continued

Chapter 22: Chapter 322

Chapter Text

322. 작업장 (2)

벨린다.

참회 교단의 지부장이자, 마계수를 소환해 밀로 상단을 전멸시킨 장본인.

지금쯤 한창 이단재판부에서 고문을 받고 있어야 할 그녀가, 왜 이런 꼴로 작업장에 숨어 있는가.

“…벨린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움찔 놀라더니 헛간 구석으로 더욱 움츠러들었다.

“네가 왜 여기에…….”

성진이 질문하며 한 걸음 다가서자, 벨린다는 허둥지둥 뒤틀린 사지를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피딱지가 잔뜩 앉은 입술에서, 마치 짐승과도 같은 거친 신음이 튀어나온다.

으어어어어-

“워워! 진정해!”

성진이 멈춰 서서 양손을 내밀어 보이자, 그녀는 겨우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리며 성진을 살피는 꼴이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한때 인퀴지터 발레리의 고문에도 당당하게 호통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무척이나 처량하고도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아는 자야?”

로건의 질문에, 성진은 벨린다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으며 나직하게 설명했다.

“어, 참회 교단의 잔당이야. 북부에서 마계수를 소환한 죄로, 이단재판부에 압송되어 조사를 받고 있었지.”

“아…….”

로건도 그제야 그녀가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지그스문트령에서 한 무리의 죄수들과 함께 내려왔었지. 인퀴지터 발레리가 관리했던가? 죄수들 중에서도 저자는 특히 강한 기척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성진과 로건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대단히 복잡해졌기 때문.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그 악명 높은 이단 재판부에서 탈옥을? 설마?’

당장 떠오른 생각 하나는, 이단 재판부가 파 놓은 함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참회 교단에서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벨린다를 도주하게 만들고, 그녀를 미행하여 지하 교단의 본거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아마도 자코모 밀로의 행방을 추격하기 위한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정말 이상하군.”

로건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부러 놓아준 거라면 분명 근처에 추적자가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근방에 인퀴지터는커녕 무력을 가진 이의 기척 자체가 느껴지지 않아.”

소드 마스터의 판단이니 정확하겠지. 성진 역시 로건의 정보원을 제외하면, 별다른 기척을 느끼지 못하던 터였다.

‘정말 자력으로 탈출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일단 벨린다의 상태만 봐도 그렇지. 절대 제정신으로는 보이지 않는 데다, 일단 신체가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한데 대체 어떻게?

“일단은 치료가 우선으로 보이는군. 이곳에 온 경위를 물어보고, 이단 재판부로 다시 데려가는 건 그 이후의 일이야.”

로건이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벨린다를 향해 다가갔다. 뭔가를 질문하고 조사하기에는, 그녀의 상태가 심각할 정도로 나빴기 때문.

“겁내지 마라. 널 해치지 않는다.”

최대한 기척을 부드럽게 조절한 덕인지, 로건이 가까이 다가가도 벨린다는 처음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녀석이 휘감고 있는 온화한 오러에 감화된 듯, 아까보다 진정된 상태로 빤히 그를 바라보았을 뿐.

그런데 막상 로건이 치료하려던 순간,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의 손에서 희게 빛나는 신성력을 확인하자, 벨린다가 창백하게 질리더니 이내 눈이 획하고 뒤집어진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벨린다!”

“아아아아! 그만둬! 제발 그만둬! 이 악마들아!”

“진정해라. 그저 치료하려는 것뿐이다.”

“끄아아아아!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던 벨린다는 곧이어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을 시작했다. 이대로는 당장이라도 죽어 넘어갈 것 같기에, 로건은 황급히 신성력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대체 감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뭐, 빤한 거 아니겠어?

이단 재판부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에게 있어, 치유라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인퀴지터 발레리의 경우만 해도 그래. 정성스레 죄수들의 이를 하나하나 뽑은 다음, 그걸 또 신성력을 써 가며 차곡차곡 심어주지 않았던가. 다음에 재차 뽑을 수 있도록.

“…저 죄수는 분명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인이다. 하지만 이대로 이단 재판부에 넘겨 끝이 없는 고문을 받게 만드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차라리 여기서 목숨을 끊어주는 쪽이…….”

로건이 대단히 착잡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벨린다를 앞에 두고 보니, 일전에 자신이 지목해 이단 재판부로 넘긴 죄수들이 생각나는 모양.

누가 땅파기의 달인 아니랄까 봐, 저 녀석은 또다시 쓸데없는 죄책감에 빠지고 있는 거다.

‘글쎄, 어떨까…….’

성진은 벨린다의 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그저 뚱하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적절한 죗값을 감히 누가 함부로 재단할 수 있겠어? 적어도 로건, 그걸 지금 네가 결정하고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그러고 보면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말한 적이 있었지.

-아직은 네가 그런 선택에 내몰릴 필요가 없느니라. 가끔은 그 짐을 다른 이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겠느냐.

아마도 모레스가, 내가 그의 가족이기에, 당신은 기꺼이 날 대신할 수 있다 말한 것이겠지.

잠시 고민하던 성진은,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로건을 불렀다.

“로건.”

“응?”

“네가 지금 황궁에 다녀와 줄래?”

“…뭐?”

“너 혼자라면, 아까보다도 훨씬 빨리 갔다 올 수 있겠지?”

성진의 갑작스러운 말에, 로건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성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상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인퀴지터 발레리를 이 자리에 불러오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어. 이단 재판부 내에서 벨린다에 대해 어떤 작전이나 논의가 있었는지를 먼저 확실히 해야지. 우리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

“만일 벨린다가 정말로 탈옥한 거라면, 그것 역시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해. 감옥의 기능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뜻이니까.”

로건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성진의 말에는 조금의 허점도 없었다.

이유가 어찌됐든, 벨린다의 처우는 이단 재판부의 손에 넘기는 것이 옳았으니까.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다. 이성진, 그렇게 할게.”

성진이 다시 재촉하자, 로건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더니 잠시 밖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을 달싹거린다. 아마도 정보원에게 뭔가를 은밀히 지시하는 눈치였다.

성진이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지만, 로건이 오러로 소리를 통제하고 있는 듯 자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최대한 빨리 다녀오지.”

이윽고 지시를 끝냈는지, 로건이 성진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당부했다.

“아마도 별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곳에 내 정보원을 두고 갈게.”

“뭐어?”

성진이 움찔 놀란 척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과하게 깜박거렸다.

“정보원이 왔어? 어디? 어디?”

“하하.”

그러자 로건이 겨우 우울한 기색에서 벗어나, 나직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응?”

“지금은 제법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고 있잖아. 처음부터 정보원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말이지. 아까도 속도를 더 낼 수 있었는데, 일부러 그에게 보조를 맞춰 준 거지?”

“…….”

어, 마냥 호구인 줄 알았는데, 이 녀석 생각보다 예리한 구석이 있는데?

멀뚱히 로건을 바라보자, 그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지금 대단히 내게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군?”

“어? 아니? 전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야 지금 네가 하는 말들은 죄다 거짓이니까.

로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단지 성진에게 주의를 주었을 뿐.

“발레리 경을 데려오지. 빨리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 말을 끝으로-

휘익.

땅을 박찬 소드 마스터는 순식간에 근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진이 감지할 수 있는 기척을 벗어나는 걸 보면, 가히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서둘러야겠는데…….’

성진은 로건과의 거리를 대충 머릿속으로 가늠하며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스릉-

맑은 울림과 함께 검집에서 뽑힌 호두까기의 검날이, 희미한 별빛을 받아 어슴프레한 반사광을 흘린다.

“히, 히히…….”

긴 검날이 천천히 눈앞으로 다가오자, 벨린다는 자신의 운명을 짐작이라도 한 듯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안도하는 것 같기도, 혹은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벨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그렇게 묻는 성진의 눈은 지독히도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성진의 오러에 동조하기라도 한 것일까, 벨린다의 눈에서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모레스 황자…….”

이제야 눈앞의 사람을 알아본 모양. 잠시 성진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고통의 너머에서 언젠가 주신께 다가갈 수 있다 여겼지. 온전한 피안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

“…….”

“예비된 자여. 너는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어떻게 그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났는지, 왜 내게 묻지 않는가?”

그래. 나는 묻지 않는다.

지금 내가 그것을 알 필요는 없는 데다, 이미 아버지는 모든 경위를 알고 계실 테니까.

분명 가장 적절한 대처를 하실 테지. 난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성진은 대답 없이 벨린다의 목을 향해 검날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주르륵,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히힛. 그걸 아는가? 예비된 자여! 나는 주신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극한 고통의 순간, 눈앞에 환한 빛이 어리고 이상한 글자들이 나타났어.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다는 신의 글자였지!”

…신의 글자?

“수락했냐고? 물론 나는 당연히 수락했다! 마침내 나의 참회가 주신에게 닿아, 그분께로 가는 길이 열렸음을 알았으니까!”

수락?

어딘가 익숙한 말이었다.

[이성진. 이거 설마…….]

성진과 같은 것을 떠올렸는지, 머릿속에서 마왕 놈이 심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아니겠어? 아무래도 벨린다의 탈옥에는, 뭔가 규상 세계의 법칙이 깊이 작용한 것 같지 않은가.

‘예전에 미로에서 돌아올 때나, 내가 드래곤의 공방을 오갈 때. 분명 환한 빛과 함께 이동하겠냐는 확인 메시지가 떴었지.’

규상 세계의 [포털]을 이용했다면, 감쪽같이 감옥을 빠져나온 것도 납득이 된다.

‘역시 참회 교단에서 벨린다를 빼내기 위해 손을 쓴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성진은 곧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게 누구든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지금 알아낼 방도는 없는데.

벨린다는 그것이 주신의 부르심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눈치니까, 거듭 캐물어 봤자 나오는 건 없을 거다.

‘이제 슬슬 끝내지 않으면, 곧 로건이 돌아올 거야.’

마음을 다잡은 성진은 마지막으로 벨린다를 향해 말했다.

“벨린다. 나는 네놈들이, 암흑 교단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희는 제국을, 그리고 이 대륙을 좀먹어가는 암적인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고통만으로 점철된 삶을 지속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이만 모든 것을 끝내고, 네가 안식을 찾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

“모든 것을… 끝낸다고?”

서서히 치켜 올라가는 검날.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는 벨린다의 눈동자가 기이한 열기로 번들거린다.

“마침내 나는 주신의 곁으로……!”

글쎄, 어떨까? 네가 죽어서 어디로 가든, 아마 그곳이 주신의 곁은 아닐 거야.

성진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막 호두까기를 휘두르려던 때였다.

“저하!”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치며 성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부디 기다려 주십시오, 저하!”

성진의 앞에 부복한 것은 검은 잠행복을 입은 왜소한 남자였다. 계속 곁에서 기척을 흘리던 로건의 비밀 정보원이다.

“자네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어린 황자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물어오자, 정보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천천히 머리를 조아렸다.

“적절한 예를 갖추지 못해 송구합니다. 저는 로건 저하의 전속 정보원인, 19호라고 합니다.”

‘19호? 엄청 괴상한 이름인데?’

하지만 그것이 본명인지는 둘째 치고, 그의 행동은 대단히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정보원은 자신이 섬기는 사람 외에는 여간해서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다샤가 일러 주었지.

아마도 황자가 직접 죄인을 향해 검을 뽑아 들자, 사안이 제법 시급하다 느낀 듯했다.

“탈옥한 죄수의 처우는, 이단 재판부의 손에 넘기는 게 순서라고 저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부디 진정하시고, 잠시 로건 황자님과 인퀴지터를 기다려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당장이라도 목을 치려는 황자의 앞을 가로막다니, 제법 황가에 충성스러운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저벅.

대답 없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자, 19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다시 성진의 앞으로 부복했다.

“저하! 저하를 막아 달라는 로건 황자님의 간곡한 당부이십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

그 말에는 성진도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로건.

어쩐지 내 의도를 미심쩍어하면서도 순순히 물러난다 했어. 정보원에게 그런 부탁을 하고 가다니, 이상한 데서 예리한 녀석.

“신성 제국의 황자로서 암흑 교단의 잔당을 풀어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이단 재판부에 넘기는 것은 너무 잔인한 처사지. 그리 생각하지 않나?”

냉랭한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든 19호는, 황자의 눈이 예상외로 감흥 없어 보이는 것에 흠칫 놀랐다.

죄수를 동정하는 듯 말하는 주제에, 지나치게 메마른 시선이 아닌가.

‘어떻게든 이분을 막을 수 없겠구나…….’

19호는 그것을 깨닫고는, 마지막으로 절절한 목소리로 간청했다.

“하면 저하, 적어도 제 손을 더럽힐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

“황자‧황녀님들을 성심성의껏 보필하도록, 성황 폐하께 직접 명받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래, 아버지도 있었군. 어쩐지, 내가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도 샤론 경이 나타나지 않는다 했어.

성진은 어쩐지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허락하지.”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19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벨린다를 향해 몸을 돌림과 동시에-

촤악!

죄수의 목에서 뿜어진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