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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e and the Dumbasses Continued Continued

Chapter 163: Chapter 463

Chapter Text

463. 축언 (3)

“당신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참으로 곤란하오만.”

마티유 원장은 큼직한 루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운을 뗐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상급 사제로, 벌써 십 수 년째 던스턴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고아원을 쥐꼬리만 한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껏 사명감 하나만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거지새끼들을 받아주고 있었단 말이오. 한데 그대들이 약속된 물량을 처리해 주지 않으니, 벌써 몇 달째 적자가 쌓여 가고 있지 않소이까?”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인이 차가운 눈으로 마티유를 훑어 내렸다. 정확히는 그가 걸치고 있는 쓸데없이 화려한 장신구들을.

“불평불만 늘어놓는 것치고는 사정이 그리 궁해 보이지 않는군. 듣자 하니 고아들을 환락가에 넘겨 쏠쏠하게 재미를 본다는 모양이던데.”

“그런 식으로라도 처분할 수 있는 건 얼마 안 되는 상등품들뿐이오. 지난달에도 겨우 사내놈 넷과 계집애 일곱을 넘겼을 뿐이니까. 쓰레기는 여전히 세상에 넘쳐나고, 그것들은 끝도 없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소.”

거기까지 말한 마티유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여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검은 사제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본래라면 절대 이 수도원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특별한 손님을.

“그러니 당신들 ‘지하 교단’에서라도 그것들의 쓸모를 찾아 줘야 하지 않겠소?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도통 목적을 알 수 없는 저 고아 새끼들에게 말이오.”

“…주신을 섬기는 종이 입에 담을 말은 아니군.”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의 언행에, 여자의 얼굴에 강한 경멸의 표정이 들어찼다. 그러나 마티유 원장은 그녀의 반응 따위 아랑곳없이 그저 가볍게 귀를 후비적거렸을 뿐이다.

“글쎄, 적어도 주신께서 방금 전 발언으로 이 마티유를 벌하실 것 같지는 않소만. 애초에 그분부터가 지독히도 인간들을 차별하시는데.”

“헛소리! 주신께서는 절대……!”

“아아, 쓸데없이 원론적인 토론으로 시간을 낭비하고픈 마음은 없소, 교구장. 그것은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든 경험적으로 터득하게 되는 진리잖소? 당신이나 나나 내심은 납득하고 있는 사실이지.”

잠시 수도원장을 노려보던 여자는, 곧 의자에 몸을 묻으며 딱딱한 얼굴로 대꾸했다.

“어쨌거나 우리의 입장은 바뀌지 않아. 애열 교단은 이제 이곳의 고아들을 데려가지 않을 테니까. 말했지 않나? 위대하신 [애열]께서 더 이상 아이들의 ‘헌신’을 바라지 않으신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마티유는 그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신들이 섬기는 그 [애열]께서는 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수십 명씩 꼬박꼬박 인신 공양을 요구-”

“마티유 원장!”

“…실례. 고아들의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셨소? 설마 당신들, 이 마티유 몰래 다른 곳에서 제물을 조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최근 [애열] 교단에 뭔가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 것은 마티유도 잘 알고 있었다.

애열의 대주교가 갑작스레 교체되고, 각 교구장들에게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소한 규칙들이 하달되었다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일체의 거래를 중단한다고?’

그가 암암리에 애열 교단에 인간 제물을 넘겨온 지가 어언 10년에 이른다. 그래서 저들의 생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주신을 섬기는 형제라 주장하지만, 지하 교단의 행태는 오히려 삿된 악마 숭배자들을 더 닮아 있었다.

인간들의 육신과 영혼을 쥐어짜서라도 대가를 바치지 않으면, 그들이 모시는 ‘대주교’로부터 어떠한 은총도 받을 수 없는 사악한 집단.

한데 지금, 그 음침한 집단의 일원이 한 점 거리낌 없는 얼굴로 이렇게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우리가 옳게 된 ‘대주교’를 맞이한 거지. 그분께서 드디어 진정한 [애열]의 뜻을 우리에게 전하시게 된 것뿐.”

“하!”

마티유의 얼굴에 왈칵 짜증이 치솟았다.

“그럼 당신은 대체 이곳에 왜 찾아온 거요? 더 이상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면서, 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거지?”

“당신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지. 우리는 지금 한 소년을 찾고 있다.”

“…소년?”

특정한 조건의 제물을 원하나? 마티유는 일순 그렇게 생각했지만, 교구장의 표정을 보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검은 머리에 회색 눈을 가진 소년이지. 아마 올해로 14세가 되었을 텐데, 혹시 이 고아원에서 그런 소년을 데리고 있지는 않나?”

“14세라면 이곳에 있기에는 나이가 좀 많은데…….”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일 가능성도 있다. 듣자 하니 어릴 때부터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았다더군.”

“흥! 이 고아원에 그런 것들이 어디 한둘이오?”

마티유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교구장의 눈빛은 확고하기만 했다.

“이맘때쯤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애열께서 말씀하셨다. 정말로 모르는가?”

“그러니까, 여기 애새끼들이 워낙 많아야…….”

“소년은 무척이나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고 하지. 그러니 절대 못 알아볼 수 없을 거다.”

…글쎄. 만약 그런 녀석이 이곳에 들어왔었다면, 진작 환락가로 팔려 가지 않았을까?

마티유는 소년을 찾는 데 지극히 회의적이었지만, 굳이 그 생각을 교구장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그녀가 품속에서 이내 커다란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부디 힘을 써 주게. [애열]께서 지금 그 소년을 애타게 찾고 계시니.”

“…그놈을 찾아서 뭘 하시려고?”

“그저 고이 지키려 하심이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따지고 보면 [애열]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랑, 그 자체나 마찬가지시니.”

“…….”

염병.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아들의 영혼을 산채로 쏙쏙 뽑아 먹은 주제에, 그놈의 사랑 타령은…….

“이건 선금으로 넘기지. 만일 그를 찾게 되면 값은 두둑하게 치르겠다.”

“내 열과 성을 다하겠소!”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마티유 수도원장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의 손에서 보석을 낚아챘다.

* * *

거리가 제법 멀었던 터라, 다샤는 그들의 대화를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드문드문 보이는 입 모양을 토대로 겨우 몇 마디의 단어를 짐작해 볼 뿐.

‘…고아… 쓰레기… 적자… 공냥? 아니 공양…….’

‘헉! 다샤, 고개 숙여! 손님이 지금 일어나려 해. 잘못하면 들킨다고!’

‘알았어.’

라미라의 신호에, 다샤는 재빨리 몸을 피해 수도원 뒤편으로 줄행랑쳤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방금 알아낸 단어들을 열심히 되뇌며 정보를 조합해 보았다.

‘애열, 제물, 그리고 회색 눈의… 소년…….’

알아낸 단어는 그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다샤는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돈에 눈이 멀어 아이들을 팔아넘기는 줄 알았는데, 실은 수도원장 선에서 이미 지하 교단과의 연결이 있었던 거야?’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 아무리 어린 그녀라 할지라도, 현재 지하 교단들이 대륙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애열], [파종], [참회], [안식].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들 네 개의 지하 교단들은, 표면적으로는 주신을 섬기는 견실한 종파였다.

그러나 그들이 신앙을 위해 벌이는 짓거리들은 빈말로라도 견실하다 할 수 없었다.

분별없이 행해지는 해괴한 의식들과 잔인한 인신 공양들. 그 때문에 이미 많은 지역에서 그들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관련자들을 종교재판에 회부하는 추세다.

만약 이 일이 세상에 밝혀지면 던스턴 영지에 엄청난 피바람이 일겠지.

‘어떻게 하지? 이건 나 혼자서 뭔가 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이미 환락가에 고아들을 팔아넘기는 일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운이 없으면 고아원 전체가 수도원장과 함께 종교 재판에 말려들지도 모르니.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우르르릉!

다샤의 암담한 심정을 반영하듯,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 * *

그렇게 다샤가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이, 성진 일행이 머무는 여관에도 또 다른 천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으르르르릉!

“미, 미안, 마사인 경!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런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십시오! 저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크아악!

모레스 황자를 앞에 두고, 마사인 경은 숫제 입에서 브레스를 뿜어내는 듯했다.

“말씀 좀 해 보십시오! 그간 제가 저하께 그렇게나 많은 것을 바랐습니까? 네?”

“아니, 그건… 꾸엑?”

“다른 게 아닙니다! 그저 미리 말을 좀 해 달라는 겁니다! 어디로 갈 거다! 언제까지는 돌아오겠다! 그런 간단한 전언 한마디 남기시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우셨습니까?”

“아니, 마사인 경. 그러니까 그거 다 오해라니까? 나도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 멀리 가게 될 줄 미처 몰랐… 켁!”

“모르긴 뭘 모릅니까! 웃기지 마십시오!”

하도 시끄러운 소리에 21호가 방문을 열어 보니-

탈탈탈!

모레스 황자가 호위기사에게 붙잡혀 앞뒤로 탈탈 털리는 중이 아닌가.

황족으로서의 예절이며 품위며 모조리 내다 버린 그 모습에, 21호는 잠시 멍하니 그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진정해. 잠시 이것 좀 놓고……!”

“네, 압니다! 저도 제 자신이 저하를 수행하기에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의 진심 어린 충정까지 그딴 식으로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마사인 경. 그렇게 자기 비하를 할 것까진…….”

“지금 제가 절 비하하는 겁니까? 아니면 저하께서 저를 그렇게 취급하시는 겁니까!”

“아, 오해야! 물론 난 어디까지나 마사인 경을 믿고 있어! 마음 깊이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다니까? 정말이야!”

“그런 영혼 없는 미사여구로 상황을 무마하려 들지 마십시오! 이제 다 소용없습니다!”

“빈말이 아니라고! 마사인 경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검술 스승-”

“떼엑!”

21호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저들의 행태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기만당하는 듯한 불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 저렇게 격렬하게 자괴감과 울분을 토해 내는 인간은, 실제 황궁 최연소 기사단장이자, 젊은 나이에 테카론 나이트를 목전에 둔 기재다.

그에게 멱살을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모레스 황자는 또 어떤가. 이미 천재 검사라고 황도에 소문이 자자한 데다, 심지어는 원숭이 망루의 정예 요원인 자신마저 훌쩍 넘어서는 실력자 아닌가.

“13호 선배가 아직 눈을 뜨지 못했는데, 싸우려면 저 멀리서 좀 조용히 싸울 것이지…….”

21호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울한 표정이 되었는데, 이 속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자격지심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왜 그렇게 뭔가 배고픈 얼굴을 하고 계세요? 21호 씨.”

그때, 에디스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접시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건 뭡니까?”

“가벼운 끼닛거리를 좀 가져왔어요. 동료분이 일어나시면 간단하게라도 요기를 하셔야 하잖아요?”

21호는 조금 감동했다.

그것참, 에디스 씨답지 않게 배려심 넘치는… 응? 잠깐.

“한데 에디스 씨. 그건 이 여관에서 파는 음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네? 그야 당연하죠. 막 병석에서 일어난 사람이 어떻게 여관의 기름진 음식들을 소화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주방을 잠시 빌려 묽은 스튜를 좀 끓여 왔어요.”

…끓여 와?

21호는 바짝 긴장했다.

“그… 실례지만. 음, 에디스 씨. 혹시 그거… 맛은 보셨습니까?”

그러자 에디스가 허리를 쭉 펴며 얄미우리만치 상큼하게 대꾸했다.

“아뇨? 혹시라도 쓸개즙 맛이 나면 어떻게 해요?”

“이봐요, 당신……!”

그거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양심입니까?

그들은 잠시 그릇을 가운데 두고서 엎치락뒤치락 쟁탈전을 벌였다.

오러 유저인 전담시녀는 도통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21호는 어떻게든 13호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겨우 그녀의 스튜 그릇을 빼앗을 수 있었다.

“쳇! 21호 씨가 뭘 잘 모르시네. 본래 몸에 좋은 음식이 맛도 쓴 법이라고요!”

에디스의 쓸데없는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21호는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이 독극물은 제가 멀리 버리고 올 테니, 저 대신 제 동료나 좀 봐 주십시오.”

“아, 네, 네. 알겠다고요.”

에디스는 의자 하나를 끌어다 얌전히 다샤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러곤 그녀의 매끄러운 다갈색 피부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근데 21호 씨가 바르샤 사람과 동료로 지내시는지는 몰랐네요. 요즘 바르토자 씨와 자주 부대껴서 그런가, 어째 이분 얼굴도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져요.”

“…그녀는 일단 제국 출신입니다. 물론 그녀의 부모님의 출신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그래요?”

“그러니 혹여 그녀 앞에서 저 헛간의 야만인과 닮았다는 둥 하는 무신경한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아마 크게 화낼 겁니다.”

“앗, 조심할게요.”

에디스에게 그렇게 주의를 주면서도, 21호는 새삼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그 야만인도 있었지. 폐하의 호문클루스를 갖고 튀는 바람에 우리 모두를 고생하게 만든 원흉!’

결심했다. 이 스튜는 그냥 헛간 옆에 갖다 둬야겠군.

“근데 21호 씨. 바트 사제님이 잘 치료해 주셨을 텐데, 왜 이분은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거죠?”

“조만간 눈을 뜰 겁니다. 그저 그간의 피로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긴 휴식이 필요한 것뿐일 테죠.”

그렇게 대꾸한 21호는, 고뇌하듯 살포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다샤를 슬쩍 일별하며 덧붙였다.

“아니면 뭔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